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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관리자 | December 20, 2012 | view 8,575
17. 고대의 천문시계 아스트롤라베 
 
“인류 최초의 시계( 計測器 )는 그림자[The shadow]이었을 것이다.” 라고 시계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즉 인류의 조상인 원시인들은 인류 최초의 휴대품이며 무기인 막대기를 휴대하고 다녔을 것이며, 휴대하고 다니던 막대기를 땅위에 수직으로 세운 후 그림자를 보고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였을 것이다, 라는 설이다.
 
그러나 이 설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해시계를 단순하게 막대기의 그림자 위치를 보고 시간을 안다는 자연스러운 사고 때문이다. 해시계는 그림자의 위치를 보고 시간을 아는 것이 아니며, 그림자의 길이를 보고서 시간을 알 수 있는 매우 복잡한 시간법이라는 것이다.
 
해시계의 바늘(Gnomon)이었을 막대기는 계절마다 그 길이가 달랐으며, 더구나 위도( 緯度 )에 의하여 고도가 달라졌으니 막대기를 해시계 바늘로 사용하였다면 계절마다 달라지는 그림자 길이를 읽을 수 있는 문자판과 계절마다 지방마다 달라지는 시표( 時表 )가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림 1] 아우크스트 시대의 로마해시계다. 일명 스카페 해시계(Scaphe Sun Dial)라고 한다.
고대의 원시인들이 계절마다 달라지는 그림자의 길이를 이해하였다면 그들을 원시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직도 많은 시계학자들은 최초의 시계가 해시계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해시계를 측시기( 側時器 )로 사용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수학를 이해하여야 하며, 그것도 아니라면 시간을 계측할 수 있는 시표라도 있어야 해시계는 시계로써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전회에서 서술하였듯이 해시계를 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시표는 기원전 611 ~ 546년에 실존하였던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dros)가 최초로 만들었으며, 아낙시만드로스에 의하여 해시계가 최초로 만들어 졌었다는 것은 디오게네스 라이르티우스(Diogenes Laertius)의 저서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계절마다 달라지며 위도( 緯度 )에 따라 변하는 그림자의 길이를 시계로 사용한다는 것이 매우 복잡하다는 것이며, 고대의 인류가 또는 원시 인류가 그림자를 시계로 사용하였다는 것 역시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클레오파트라의 돌” 이라고 불리는 오벨리스크(Obelisk)는 기원전 1426년 투트모세 3세가 승전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돌기둥이다.
 
시계학자들은 투트모세의 오벨리스크도 해시계로 사용하였을 것이라는 설을 주장하고 있으나 투트모세 오벨리스크 주변의 어느 곳에서도 해시계의 문자판은 찾아볼 수 없다, 투트모세의 오벨리스크에 있는 상형문자는 투트모세 3세의 전승과 업적의 기록만 있으며 해시계에 관한 글은 한 줄도 없다.
 
 
[그림 2] 카르나크 사원의 오벨리스크다. 탑에는 투트모세 3세의 업적만이 기록되어 있다.
시간을 측정하기 위하여 세워진 진정한 해시계 오벨리스크는 로마의 마르스 광장에 세워진 오벨리스크가 고대의 해시계로서 진정한 그노몬(Gnomon)이다. 이것은 로마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BC.63.9.23-AD.14.8.19)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해시계의 시표로서 제구실을 한 오벨리스크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가장 자연스러운 시간측정법인 해시계가 수학적으로는 가장 복잡한 방법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우쿠스트의 마르스광장의 오벨리스크도 약간의 의문점이 남아있다. 기록을 보면 중세 르레상스 때에 신도시를 만들기 위하여 많은 유적을 옮겼다는 기록이 있으며 마르스 광장의 오벨리스크도 이때에 옮겨졌다는 기록이 있으니 오벨리스크의 시간표도 이때에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다.
 
고대의 수학자들은 수직으로 세워진 그노몬에 수평의 해시계 문자판에서 계절마다 달라지는 시간선을 그리는 데에만 몰두하였던 것 같다. 이런 시간선을 그리는 법을 최초로 창안한 사람은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디오도루스(Diodorus)인데 불행하게도 디오도루스의 독창적인 이론은 비트르비우스(Vitruvius)의 불완전하고 모호한 설명을 통해서만이 남아있다.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아마도 비트르비우스도 이 복잡한 시간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은 아닌가....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고대의 해시계 시간표(시간선)에 대한 기록은 천문학자이며 수학자인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os 영어명:Ptolemy)가 아날렘마(Analemma)에 대한 설명을 알마게스트(Almagest)에서 그 방법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집트의 투트모세 3세의 오벨리스크의 해시계 주장은 그냥 추측만 한 것 같다. 필자는 5년 전에 국내 정상급의 고고학자들과 5박 6일을 해외로 고고학 테마여행을 한 적이 있다. 그들과의 작은 만남에서 필자는 놀랍고 당황스러운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고고학자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나 그들은 거의 모든 상황을 과학적이지 않은 자신의 상상력에 의존한다는 것을 보았을 때 우리가 그동안 배웠던 고고학이 이렇게 정의가 내려진 것인가에 실망을 하였으며, 일행이었던 다른 분야의 교수에게 저건 거짓이 아닌가 하고 물었더니 그 분도 “그렇다” 하고 동의하였다.
 
그 후 서로가 가는 길이 달라서인지 그분들은 만나는 일이 없었다. 필자가 최초의 인류가 사용했던 시계를 확실하게 알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능하다면 과학적이며 설득력이 있는, 논리가 정연한 논리적인 주장을 하고 싶다.
 
인류의 역사에 해시계에 관한 기록보다는 물시계인 클렙시드라에 관한 기록은 매우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기록이 되어 있으며 고대의 물시계 클렙시드라는 현존하고 있다.
 
클렙시드라는 하루 24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대형의 것도 있었으며, 재판정에서 발언권의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소형의 것들도 있었다. 재판 중에 원고와 피고의 발언시간을 공정하게 배분하기 위하여 클렙시드라를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런 종류의 클렙시드라는 현재 몇 개가 남아있다.
 
이런 종류의 클렙시드라(Clepsydra)는 현재의 계측기( 計測器 )와 같은 타이머(Timer)용으로 사용된 것이므로 엄밀하게 말하면 시계가 아닌 계측기라고 말할 수 있다. 고대의 시계를 연구하다 보면 클렙시드라는 시계가 아닌 계측기 즉 타이머로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고대의 천문학자들은 밤하늘에 출몰하는 별들의 항성시를 메르케트와 바이(Merkhet & Bay)로 측정을 하면서 36개의 데칸별(Decan Stars)들의 출몰 시간을 클렙시드라를 이용하여 밤의 항성시를 12시간으로 정의하였다.
 
그러면 기원전 1400년의 고대인들은 밤 시간은 항성시를 사용하여 알 수 있었지만 낮 시간은 어떻게 측정하였을까?
 
유감스럽게도 과학적으로 해명되고 있지 않다. 다만 고대 동양의 과학발전을 증명하는 놀라운 발명품들이 몇 점 남아있다. 이 발명품은 천문학적 시간측정에 뛰어난 선진국이었던 이슬람 문명이 만들어낸 아스트롤라베(Astrolabe)다. 물론 고대의 것들은 남아있지 않으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아스트롤라베는 베를린 국립도서관에 보존되어있는 모함마드 이븐 아스-사파르(Mohammad ibn as-Saffar. 1029년 제작)의 아스트롤라베가 있다.
 
 
[그림 3] 모하마드 이븐 아스-사파르가 만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아스트롤라베.
이것은 스페인 코르도바(Cordoba)에서 실존했던 기구제작자 모함마드 이븐 아스-사파르가 만든 것으로 마테르(Mater Holds)에는 그가 살았던 코르도바와 톨레도(Toledo)의 판(Plates)을 포함하여 아홉 개의 판이 있다. 아스트롤라베는 한 개의 레테(Rete)에 여러 개의 판(Plates:각 지방마다 위도가 다르므로 여러 개의 판이 필요했다)이 필요하였으며, 각 지방의 위도에 맞추어 제작된 판을 레테에 끼워서 태양의 고도를 측정하면 레테에 있는 지성침(Stars:레테에는 16 ~ 36개의 지성침이 있음)은 측정 당시의 시각을 정확하게 가리킨다.
 
아스트롤라베는 공 모양의 천체와 천구를 원형의 평면으로 펼친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os) 우주의 모형이다. 전면에는 항성들의 위치를 표시한 투각된 평면의 레테가 있으며, 레테의 중심은 천체의 중심인 북극이 있으며 남회귀선( 南回歸線 )은 원형의 평면판 바깥쪽 테두리에 그려져 있다.
 
투각된 레테의 뼈대에는 여러개(16 ~ 36개)의 지성침이 있는데, 이 지성침은 천체에서 항성시를 알 수 있는 밝은 별들의 위치를 가리키도록 설계되어있다. 레테 뒤에는 기구의 본체가 있는데 이것을 마테르(Mater Holds)라고 부른다. 이 마테르에는 여러 지방(위도가 다른)에서 사용할 수 있는 여러 개의 판이 들어있다.
 
[그림 4] 2차 세계대전 이전에 이란에서 반출된 아스트롤라베를 분해한 것이다. 조립하여 사용하면 메카를 향하는 순례자를 위하여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판들에는 지구상의 특정 위도를 나타내는 나선형의 그물 모양의 좌표가 그려져 있으며 거기에 나타내는 시간표가 그려져 있다. 원하는 위도판을 마테르에 넣어서 레테를 올바른 위도판에 맞추어 조정하면 수많은 천문학적인 수수께끼들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레테의 중앙에 고정되어 회전하는 앨리데이드(Alidade 視準器 또는 Sighting Arm) 양쪽에 있는 작은 구멍을 통하여 태양이나 항성의 고도를 알아내면 , 낮 또는 밤의 정시( 定時  )와 부정시( 不定時 )에 따라서 시각을 알 수 있다. 또한 원하는 날의 태양이 뜨고 지는 시각도 알 수 있으며, 어느 특정한 별들이 움직이는 시간을 계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먼 미래와 과거의 특정한 날짜의 천체의 정렬상태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여 천문학의 총아라 하여도 무방하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천체, 그리고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태양과 별들의 움직임들을 알 수 있는... 바로 고대의 타임머신이다.
 
도대체 이렇게 놀라운 천문 관측의( 觀測議 )를 어떻게 만들 수 있었으며 왜 그들은 아스트롤라베를 만들어야 했으며, 그들은 누구인가?
 
최초의 아스트롤라베에 관한 기록은 비트르비우스(Vitruvius. 기원전 1세기에 활동하였다)의 그리스의 천체시계에 대한 기록에 평사도법( 平射圖法 )에 대한 수학적인 기록을 하고 있으며, 프톨레마이오스(AD 1세기-2세기경 ?)도 그의 저서 천구평면도에서 평사도법( 平射圖法 )에 대한 수학적인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또한 아스트롤라베 제작법에 대한 가장 오래된 문서는 비잔틴 제국의 시대 때 알렉산드리아인 테온(Theon. AD 4세기 때의 수학자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에 대한 주석을 썼다)의 저서가 있다. 테온의 아스트롤라베에 대한 제조법이 이슬람 세계로 전해졌고, 이슬람에 의해 정복된 스페인으로 제조법이 전해져 12세기에는 유럽에 새로운 천문학에 대한 관심이 일어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런던의 영국박물관에는 기원전 650년의 유물인 평사도법에 의하여 제작된 놀라운 점토판의 천구평면도( 天球平面圖 )가 있다. 이 유물은 바빌로니아 니네베(Babylonia Nineveh:아시리아 제국의 수도)에서 발굴된 것으로 바빌로니아인들의 작품인지 수메르인(Sumerian)들의 작품인지는 확실하지는 않다.
 
다만 이 천구도는 하늘을 여덟쪽으로 나누었으며 아스트롤라베 또는 현대의 천문학으로 계산하여 보면 이 점토판 천구평면도는 기원전 650년 1월 3 ~ 4일 당시의 니네베 밤하늘을 나타내고 있으니, 고대의 수메르인들이 만들어낸 단순한 천구평편도인지 아니면 인류 최초의 아스트롤라베인지 또는 고대인들의 점성술과 연관이 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다.
 
[그림 5] 현존하는 바빌로니아인들의 천구평면도 점토판. 기원전 650년 1월 3 ~ 4일 당시의 니네베 밤하늘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미 BC 650년에는 메르케트와 바이가 이집트에서 오랜 기간동안 실용화되어 사용되어 왔으며, 기원전 1400년에 만들어진 클렙시드라의 36개의 데칸별들과 연계해 본다면 이 고대의 점토판을 단순한 천구평면도로 보기에는 예사롭지는 않다.
 
다만 아스트롤라베가 정교하고 가장 정확한 해시계로 발전된 것은 이슬람 문명이 크게 공헌을 하였음은 분명하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아스트롤라베는 1029년에 제조된 모함마드 이븐 아스-사파르의것이 가장 오래된 것이며, 유감스럽게도 모함마드의 아스트롤라베 보다 더 오래된 것은 아직 발견되고 있지 않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아스트롤라베가 스페인의 모함마드의 것이며 이 제작 기술이 왜 이슬람에서 발전하였을까? 그것은 코란 제2장 144절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너희의 얼굴을 거룩한 모스크(Mosque) 쪽으로 돌려라.
너희가 어디에 있든 그 쪽 방향으로 얼굴을 돌려라.”
 
“카바 신전은 성전의 '키블라' 이고 성전은 성역의 '키블라' 이며,
성역은 태양이 떠오르는 곳으로부터 태양이 지는 곳에 이르는 전세계 주민의 '키블라' 다.”
 
이 내용에서 “키블라(Qibla)” 는 이슬람이 주장하는 세계의 중심인 사우디아라비아 메카(Mecca)에 있는 카바(Kaaba) 신전을 향하는 방향, 즉 카바 신전을 향하는 이 거룩한 방향을 “키블라” 라고 하며, 지금까지 필자가 만나본 몇 개의 고대 이슬람권의 아스트롤라베는 한결같이 메카를 향해서 여행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으니 이슬람 세계에서 메카를 향해서 즉 “키블라” 의 방향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 그들은 정교하고 정확한 아스트롤라베가 필요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키블라” 방향으로 매일 다섯 번의 기도를 하였던 것이다.
 
 
[그림 6] 1796년 발간된 유럽의 고문서에서 찾아낸 천구평면도의 일부분이다.
오늘날 현대 과학이 놀라는 아스트롤라베는 고대 이슬람의 문명이 그들의 거룩한 방향의 “키블라” 를 위하여 만든 정교한 천문 관측의로 발전시켰으며, 고대와 중세의 수많은 여행자들에게 그들이 가야 할 방향과 정확한 기도 시간을 알려주는 가장 정교하고 정확한 천문시계였다.
 
그러나 14세기 기계시계가 등장하면서부터 인류의 기억 속에서 아스트롤라베는 서서히 잊혀져 갔으며, 천문학과 우주의 시간이 결집된 아스트롤라베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490㎣ 도 안되는 고대의 작은 청동 아스트롤라베는 현재 열 손가락을 겨우 꼽을 수 있을 정도의 유물만이 보존되고있으며, 현대 과학의 상징인 원자시계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원자시계, 그대는 과거와 미래 그리고 우주의 시간을 알고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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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여자대학교 교수 정 윤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