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도 기본이 중요
시계명장 정윤호 타임서울대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고 유일한 대형 기계식 탑시계가 복원됐다. 서울대병원 의학박물관은 올해 복원된 옛 대한의원 건물 탑시계를 5월부터 전시하고 있다. 복원은 시계명장 정윤호 타임서울 대표가 맡았다.
“복원 된 시계는 너무나 잘 만들어서 관리만 잘 해 주면 1000년도 더 갈 수 있습니다.”
정 명장은 복원된 시계를 거듭 칭찬했다. 하지만 시계는 생각보다 작고 초라하다. 시계추의 흔들림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장치에 잠시 눈길이 가지만 유럽의 유명한 탑시계처럼 인형이 튀어 나오거나 화려하게 디자인된 것은 아니다. 겉보기에는 정 명장의 칭찬처럼 명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정 명장의 생각은 달랐다.
“예전에 시계 만지는 사람들이 법정스님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법정스님은 좋은 시계가 뭔지 물었죠. 유명 시계 상표들이 언급됐어요. 그런데 법정스님은 좋은 시계는 사용하는 동안 하자가 없으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모두가 입을 다물었죠.”
정 명장은 법정스님의 일화로 좋은 시계에 관해 설명했다. 그리고 자기 스타일과 콘셉트에 어울려야 한다는 조건을 덧붙였다. 하지만 사람들이 명품에 관해 착각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명품 시계 커뮤니티의 분위기를 물건 파는 사람들이 흐린다고 지적했다.
“화려한 디자인에다 보석 박힌 시계는 그냥 비싼 시계입니다. 시계는 시간을 보호하고 지켜 주는 기계입니다.”
정 명장은 아트모스 시계를 명품 시계로 꼽았다. 아트모스 시계는 온도에 따라 수축과 이완을 자동 반복하는 장치로 태엽을 감는 시계다. 이론상으로는 영원히 작동하는, 인류가 멸망해도 계속 작동하는 인간의 꿈을 실현한 시계다. 정 명장은 시계의 의미는 사라지고 이문이 많이 남는 시계만 남았다고 안타까워했다.
시계는 생명력 불어 넣는 유일한 공산품
“시계는 생명력을 불어 넣을 수 있는 유일한 공산품입니다. 도자기나 가구 같은 생명이 없는 것을 수집하는 것과는 다르죠.” 정 명장은 시계도 수집하고 있다. 개인 소장품으로 서울 강남구 논현동 매장에서 시계 전시도 함께 하고 있다. 시계는 고장 난 것을 수집한다. 값이 싸기 때문이다. 그리고 완벽하게 죽어 있는 시계를 살려 낸다. 수리가 끝난 시계는 심장이 박동하듯 시계의 밸런스가 흔들린다.
정 명장은 박동하는 시계 장치의 매력에 이끌려 시계 수리를 시작했다. 중학교를 마치고 다음날부터 금은방에서 도제로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술을 잘 전수해 주지 않아서 가게를 옮기기도 했지만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우연한 기회에 정 명장의 손재주가 스승의 눈에 들면서 시계 수리를 본격 배울 수 있었다. 한때 정 명장은 백화점에서 일했다. 당시 매장에는 날짜가 표시되는 벽시계가 있었다. 하지만 그 시계는 기술이 떨어져서 달이 넘어가도 날짜는 31일, 32일 순서로 계속 넘어갔다. 어느 날 매장을 방문한 일본인이 일본에는 날짜가 정확히 넘어가는 시계가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비웃었는데 한 달 뒤 그 일본인이 시계를 가져왔어요. 날짜가 정확하게 넘어가는 것을 보고 일본 기술과의 격차에 충격을 받았죠.” 정 명장은 시계 수리에 자부심을 대단했지만 일본과의 격차에 충격을 받고 외국 기술 공부를 시작했다. 한 달에 수백만 원의 돈을 들여 외국 자료를 번역했다. 번역가도 전문 용어를 번역하기 힘들어서 정 명장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정 명장은 이렇게 한국 최고의 시계 장인이 됐다.
스타일·히스토리·공감
얼마 전에는 한 스마트폰 제조사에서 정 명장에게 연락이 왔다. 최근 스마트 시계가 중요한데 디자인이 좋지 않다. 그래서 정 명장에게 회사 디자이너를 대상으로 강의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 명장은 거절했다. “예전부터 스마트 시계를 보고 이 정도밖에 못 만드나 하고 생각했어요. 스마트폰 제조사와 시계제조사에서 고민은 하지만 잘 안 되고 있어요. 결국 갖고 싶다는 욕망이 들어야 해요. 그러면 세계를 정복할 수 있겠죠.”
정 명장은 기업에서 원하는 것은 강의 한 번으로 알려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어떤 형태가 손목시계에 적합한지, 사이즈는 어때야 하는지는 연구진이 고민해서 찾아야 하는데 그냥 알려 달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또 정 명장은 정단한 대가를 지불할 생각도 없고 고민하지 않는 기업은 성공할 수 없다고 일침을 놓았다. 이 가운데 다시 한 번 명품에 관해 강조한 정 명장의 말은 예사롭지 않다.
“명품은 시계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 있어요. 사람들이 소유하고 싶은 거 가운데 자동차, 옷, 시계 같은게 있죠. 안경도 마찬가진데 자기 얼굴에 안 맞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명품이 아닙니다. 그리고 명품은 히스토리가 있어야 합니다. 공감을 일으켜야 하죠.”
<본 기사는 TECH M 제14호(2014년6월) 기사입니다>
도강호 기자 | 2014.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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