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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 December 21, 2012 | view 10,712
두어 달 전에 나는 계측장치의 종류라는 글을 썼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한 독자가 이 글을 보고서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의 집에서 소장하고 있는 골동품 중 작고한 큰 형님의 유품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는 연락이 왔었다. 작고한 형은 해군으로 복무를 장기간 하였는데 여러 나라를 방문하면서 이상한 유물들을 수집하였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특이한 소장품이 있었는데 매우 단순하면서 흔한 유물인 것 같았으며 또한 많은 의문점이 있었으나 많은 전문가들과 여러 곳에서도 명쾌한 답을 듣지 못하였다가 우연히 필자가 쓴 계측장치의 종류라는 글을 보고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하였다는 것이다.
[그림 1] 2004년 4월 4일 KBS 진품명품에서 등유시계가 발견되기 전까지 이 그림의 등유시계가 유일한 자료로 평가되었다.
그는 다른 용도의 것인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말도 하였다. 필자는 궁금하였으나 지방이라 선듯 달려가 볼 수도 없었다. 사진을 보낼 수 있느냐 하였으나 컴맹이라서 디지털 사진을 보낼 처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몇 번의 통화 끝에 나는 확신이 가기 시작하였다. 분명 등유시계의 진품인 것 같았다.
중세의 등유시계는 길다란 원통형( 圓筒形 )의 등대석( 燈臺石 )에 고래기름 또는 올리브유를 이용하여 시간을 측정하였다. 물론 중세의 등유시계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오래 전 미국의 한 골동품상에서 바로크시대에 사용된 등유시계를 보았으나 그것도 기름을 담고 있는 유리병이 없었으며 시간 띠도 보이지 않았다.
골동품상인은 그 물건의 용도를 알지 못하는 것 같았으며, 다만 약 300 ~ 400년 이상 된 것이며 스탠드 위에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라는 이야기만 하였다. 한순간에 바로크의 등유시계라고 알았지만 구입이 쉽지 않았다.
모든 상인들이 그러하듯이 그는 고객의 눈치와 고객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만 하였으며, 오랜 상인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기( 氣 )싸움을 하려고 하여 그때에는 구입은 매우 어려웠다. 돌아서려는데 나를 다시 불러 세우더니 이 물건의 용도를 알고 있지 않느냐, 사지 않으려거든 용도나 알려주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하였다. 왜 사지 않으려 하겠는가 구입을 하고 싶어도 분명 많은 금액을 요구할 것이며, 예사 물건이 아닌 것은 서로가 알고 있는데 여기서 밀리면 구입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생각에 말없이 돌아왔다. 판매자가 용도를 알지 못하니 쉽게 팔리지는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림 2] KBS 진품명품에 출연되었던 등유시계를 저수조와 받침대를 분해한 모형이다. 타원형의 깔때기 형태의 저수조 밑을 나사형태로 제작하였다.
그러나 기대는 얼마 후 허무하게 무너져 버렸다. 귀국을 하기 위해 다시 그곳을 방문하였을 때 억장이 무너지는 가슴 철렁한 경험을 하였다. 분명 있어야 할 바로크의 등유시계 스탠드는 그 자리에 보이지 않았다. 상인의 말로는 캐나다의 관광객이 구입해 갔다는 것이다. 그도 용도는 알지 못한 것 같다며 그는 나에게 다시 어떤 물건인가 하며 물었다.
유물의 용도를 알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으며, 판매된 장부와 구입해간 캐나다인의 인적사항이 기록된 장부를 보여 주었다. 이제 구입을 하려거든 캐나다로 가야 할 것이다. 라는 농담도 하였다. 기막힐 일이였으나 가격이나 알려고 판매 금액을 물었더니 3,000불에 판매를 하였다는 것이다.
3,000불이라면 구입한 캐나다인도 분명 바로크의 등유시계임을 알고서 매입한 것이다. 원형 그대로가 아닌 가장 중요한 유리병 저수조(Reservoir)와 시간( 時間 )띠가 없는데 쉽게 구입해갈 리가 없었다. 캐나다인의 인적사항과 전화번호를 얻어서 알아본 결과 그도 바로크의 등유시계임을 알고 있었다. 그도 나와 같이 시계를 수집하는 전문 시계인이었다. 판매는 할 수 없으나 사진은 보내줄 수 있다며 바로크의 등유시계에 관한 자료도 있다고 하였다. 아쉽지만 자료를 준다고 하니 받는 것이 득이 아닌가...
[그림 3] KBS 진품명품에 출연된 등유시계를 조립하였다. 그러나 이 등유시계에서도 시간띠는 소실되어 모든 전문가들을 혼란스럽게 하였다.
가치가 존재하는 모든 물건은 반드시 인연이 있어야 만날 수 있으며 인연법( 因緣法 )에 의해서 만나고 헤어지는가 보다. 불가( 佛家 )의 경( 經 ) 중에서 무상계( 無常戒 )라는 경을 보면 인연에 관한 내용이 있는데 모든 것들은 본래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서로가 만나지 않았으므로 본래부터 존재하지 않았으니 존재하여야 하는 이유가 생겼으며 만나지 않았으니 만나야하는 이유가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크의 등유시계를 취하지는 못하였으나 만나기는 하였으니 그것도 인연일 것이다.
2004년 4월 4일 오전 11시에 방영된 KBS 제 1 TV 쇼 진품명품에 출연된 등유시계는 그렇게 만났다가 헤어진 그때의 등유시계 보다도 더욱 명확하며 완벽한 유물이었다. 또한 이 시계는 오랜 기간 동안 전해져 왔던 등유시계에 관한 모든 내용을 한순간에 뒤집어 놓았다. 많은 시계학자들이 그동안 상상하고 내놓았던 등유시계의 원리에 관한 학설들이 잘못된 것이라는 질타와 함께 등유시계는 우리 앞에 그렇게 나타났다.
역사적 유물을 고증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려운 작업인가......
그동안 기름을 담는 저수조( 貯水操 )가 [그림 1]의 형태처럼 일자의 원통형 저수조( 貯水操 )일 것이라고 모두들 생각해 왔으나 그것은 우리 모두가 직접 만들고 실험해 보지 않은 게으른 자들의 이론이었다. 그렇게 많은 모래시계를 보고서도 왜 우리는 물질의 연속성( 連續性 )에 관한 이론을 생각해 보지 않았는가...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깔때기 형태의 저수조일거라는 생각은 우리는 정말 생각도 못하였다. 우리의 생각이 1700년 대의 장인들의 생각에 미치지 못한 것인가...
[그림 4] 등유시계에 현대에서 사용되고 있는 석유를 사용하여 실험을 하였다. 8시간용으로 충분하였다.
바로크시대 이전에 인류 문명을 가장 아름답게 꽃 피웠던 르네상스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잊고 있지 않았는가... 이미 그때에 과학은 있었으며 등유시계도 완벽에 가까운 과학에 의해서 탄생되었다. 등유시계가 KBS 스튜디오에 도착하였을 때 많은 관계자들은 여러 가지 의문점을 말하였다.
1. 저수조의 기름이 아래로 쏟아질 거라는 의견과(다른 보조 부품이 있었을 거라는 의견).
2. 기름이 어느 정도 소비되면 기름 상부의 진공상태로 인하여 기름의 공급이 끊어질 거라는 의견.
3. 유리 저수조의 크기로 보아서 한 두시간 정도 사용할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으며,
4. 어떤 이들은 심지가 있는 심지( 心―:Wick )대에 열이 가해지면 심지대 근처의 기름이 기화되어 받침수조에 불이 옮겨 붙지 않겠느냐는 매우 논리적( 論理的 )인 의견도 있었다.
[그림 5] 받침수조의 공간은 석유를 사용할 경우 석유가 기화되어 받침수조에 불이 옮길 수도 있었다.
나는 말만 하지 말고 소장자의 허락을 받아서 직접 실험을 한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니 실험을 해보자고 하였다. 고래기름과 올리브유는 쉽게 구할 수 있는 기름이 아닌 만큼 현대의 등유(Kerosene)를 이용하여 실험을 해보자고 하여 실험을 해보았다.
모든 의문은 일시에 해결이 되었다. 깔때기 형태의 저수조의 기름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좁아지는 저수조의 구조로 하부의 밀도( 密度 )가 낮아지므로, 기름은 받침저수조의 작은 양의 기름으로도 충분하게 조절이 되었다. 또한 진공으로 인하여 기름공급이 끊어질 거라는 의견도 무시되었다. 저수조의 기름은 아무 저항 없이 서서히 소비되고 있었다.
저수조 병이 저렇게 적어서 몇 시간 사용했겠느냐는 의견은 웃음거리가 되었다. 놀라게도 등유시계는 캐나다인이 보내준 자료에서 말하듯이 8시간 이상을 측정하였다. 하룻밤의 측정용으로는 충분한 용도로 만들어졌었다.
심지대의 열기에 의해서 받침 저수조의 기름이 기화될 거라는 의견은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고래기름과 같은 점도( 粘度 Viscosity )에서는 원활한 연소에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증을 얻을 수 있었다.
아쉬운 것은 심지대 불꽃의 크기에 따라서 시간의 속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불꽃이 크면 기름은 빨리 소비되고 불꽃의 크기만큼 시간의 빠름도 비례되었다. 아마 이 등유시계의 사용법 중에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가 불꽃의 조절이 가장 중요하였을 것이다. 문헌에 의하면 불꽃의 크기를 잘못 조절하여 약속시간을 제대로 지킬 수 없었다는 기록을 볼 수 있었다.
이 등유시계가 사용된 것은 1600년에서 1800년까지 사용되었다. 이때에 이미 정교한 기계시계가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이 사용을 하였는데 등유시계는 왜 바로크시대인 이때에 만들어져 사용이 된 것일까?
[그림 6] 중세 신분의 상징이었던 휴대용 회중시계. 18금으로 제작되었으며 최상의 조각과 최고의 화가, 그리고 최상급의 시계장인에 의해서 탄생되었다.
그것은 신분의 상징이었던 고급시계는 귀족들과 가진 자들만의 소유물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빈곤한 서민들에게 어두운 밤을 밝혀주며 시간을 동시에 알려주는 일거 양득의 등유시계는 매우 유용한 계측장치이며 등불이었을 것이다. 또한 자급자족하면서 살아가는 빈곤한 수도원의 수도승들에게는 무엇보다도 더할 것 없는 귀중하고도 중요한 반려자이었을 것이다.
문헌에 의하면 이 등유시계는 수도원에서는 당번이 있어서 밤새 등유시계를 보고 시간을 알렸다고 한다. 혹자는 가물거리는 등불을 계속 보고 있다가 마치 최면에 걸리듯이 잠에 들어서 야간에 세 번의 기도를 하는 수도원의 기도시간을 알리지 못하여 중벌을 받은 승려들이 있었다고 한다.
1500년 휴대용 기계시계가 발명되었을 때 많은 시계사들은 서민들을 위한 휴대용 시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었다. 그러나 휴대용 시계는 언제나 부유층의 전유물이었으며, 그들은 이 휴대용 시계가 소형화된 1600년 경에서도 항시 허리춤에 매달고 다니며 부와 권력을 과시하였다.
또한 이렇게 허리춤이나 목에 걸고 다니는 회중시계는 당시의 소매치기들이 노리는 가장 중요한 목표물이었으며, 도둑과 소매치기들의 생계를 이어주는 중요한 전유물이었다. 당시에 이 권력과 부위 상징이었던 회중시계가 도둑과 소매치기들의 중요 목표물이 되어 술에 취한 부유층들의 분실이 많아지자, 그들은 도둑을 체포하면 거의 모두를 처형하기도 하였다.
[그림 7] 본래의 시간띠는 헝겊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간띠는 필자가 스테인리스로 제작하였다.
이러한 기록들을 보면 서민들이 고급 회중시계 또는 기계식 탁상시계와 벽시계들을 소장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 대안책으로 만들어진 시계가 바로 이 등유시계일 것이다. 이 등유시계는 매우 유명한 시계였던 것은 분명하다. 문헌에 의하면 이 등유시계를 당시에 유럽인들은 이 등유시계를 카덴의 등불(Cardan Lamps)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등유시계의 재료는 백랍( 白蠟:Pewter )으로 만들어 졌으며 본래의 시간띠는 헝겊으로 만들어 졌었다. 필자는 문헌을 기초로 하여 시간띠를 제조하여 보았다. 장기간의 사용과 쉽게 파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0.13mm 두께의 스테인리스 원판에 인쇄를 하여 1700년 대 시간법에 의해서 원형의 그대로 제작하였다.
당시의 시간법은 현재의 시간법과 달라서 보통 서민들과 일반인들은 부정시법( 不定時法 )이었으며, 많은 사람들은 해가 뜨면 1시부터 시작하여 시간을 측정하였고, 해가 지면 저녁시간을 1시부터 시작하여 분활 사용을 하였다. 현재의 하루를 24시간 나누어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사실 1850년 대부터이었으니 엄밀하게 말하면 인류의 정시법( 定時法 ) 사용의 역사는 150년 정도로 말할 수 있다.
물론 기계식 시계를 소장하였던 부유층들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였던 24시간 법을 사용을 하였으나 북부 유럽은 거의 모두가 1850년까지 부정시법을 사용하였다.
[그림 8] 등유시계의 불빛은 어두운 밤을 조명하기에 충분하였으며 매우 아름답게 보여졌다. 17세기 이 등유시계를 왜 카덴의 등불이라고 불렸는지 알 수 있었다.
이 바로크시대의 등유시계는 필자의 추적으로는 랄프와 터리 코벨(Ralph & Terry Kovel)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 같았다. 그들은 독일인이었으며 필자의 조사로는 카덴의 등불을 랄프와 코벨이 만들었다는 기록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물질의 연속성의 원리와 수조의 밀도를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비록 현대 시계의 정밀도에 크게 미치지는 못하였으나 이 카덴의 등불은 수많은 유럽의 서민들에게는 어두운 밤을 밝혀주는 밝은 등불이었으며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시계이었을 것이다.
비록 현대의 시계학자들은 랄프와 코벨의 등유시계를 가리켜 좋지 않은 시간계이었다고 평가하고 있으나, 17세기와 18세기의 인류 문명의 한 축을 이루었음은 분명하다. 더구나 어떤 시계 학자는 이 시계로 약속시간을 맞추기는 매우 어려웠으며, 이미 당시에 많은 다른 사람들은 기계식 시계를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바로크시대의 등유시계인 카덴의 등불은 시계의 역사에 큰 의미가 없다고 평가절하를 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의 의견은 다르다 어찌 인류의 역사가 가진 자들만의 역사이며 역사에 기록된 자들만의 역사인가... 수많은 민초들이 비록 역사의 뒤안길에서 사라져 갔지만 분명 인류의 역사는 인류 문명에 공헌하여 이름이 남겨진 자들만의 삶의 역사는 아니다. 필자는 소수의 부유층만을 위해서 만들어진 기계식 휴대용 시계의 역사보다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민초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며 어두운 밤과 시간을 밝혀준 등유시계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오늘 등유시계를 실험하기 위해서 카덴의 등불에 불을 붙이고 가만히 않아 1600년 대의 인류의 삶을 바라다본다.
[그림 9] 심지대의 불꽃의 크기는 시계의 빠르고 늦는 진행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심지대는 현대의 기계식시계의 조속장치이었다.
가물거리며 미세한 실바람에도 흔들리는 카덴의 불꽃은 당시의 억눌리고 억압당했던 민초들의 가련한 삶을 보는 것 같아 서글프기도 하다. 조금이라도 작은 바람이 다가오면 꺼질 듯이 흔들리며 꺼지지 않으려고 불꽃이 커지며 그을림을 토하는 아련한 불꽃은 착취당하고 서럽게 살아가던 300년 전 가난한 서민들의 삶을 보는 것 같아 숙연해 진다.
그러나 인류가 기억하든 기억하지 않았든 간에 시계의 역사에 200년의 시간의 장을 장식한 등유시계를 우리나라에서 발견하고 우리가 고증하였다는 기쁨과 함께 바로크시대의 카덴의 등불을 세상에 알리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
오늘 소장자는 한국의 시계 발전과 필자의 시계역사 박물관 설립에 도움을 주고자 등유시계를 양도하겠다는 연락을 주어서 또한 기쁘다.
등유시계는 수많은 유럽의 전쟁 와중에 거의 모두가 소실되어 현재 극소수만이 보존되고 있다.
필자는 독일의 한 시계박물관과 캐나다인이 구입해간 등유시계 이외의 카덴의 등불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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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명장
고급 시계사
시계 산업기사
부산여자대학교 교수 정 윤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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